허명욱 부산 개인전 '칠하다' 전시장
“내 모든 작업은 7-8세의 정서에서 출발한다.”
옻칠 작업으로 겹겹이 쌓아 칠해진 아톰 형상의 오브제는 허명욱을 대표하는 조각 작품입니다. 아톰 시리즈에 대해 묻자 작가는 본인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유년 시절 작가의 방은 좋아하는 것들을 한가득 모아 놓은 위안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는 항상 아톰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눈이 금세 초승달처럼 휘어집니다. 어린 허명욱은 굉장히 개구쟁이 어서 밖에서 험하게 놀다 다쳐서 엉엉 울면서 집에 들어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때 어린 존재를 안정시키고 위로해 준 것은 부모님이 아닌, 소년의 방에 놓인 아톰이었습니다.
허명욱의 아톰
아톰은 1952년 탄생한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입니다.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가 잡지 <소년>을 통해 연재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며 한국까지 그 영향력을 넓히게 됩니다. 아톰은 과학자 텐마 박사가 죽은 아들을 대신하여 만든 로봇으로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 신체에 초능력을 부여받아 세상을 구하는데 앞장서는 영웅으로 활약합니다. 당시 어린이들은 자신과 같은 소년의 모습으로 악당을 제압하는 아톰을 보며 본인들의 이상을 투영합니다. “짱 쎄고 멋진 소년”의 활약을 자신들의 업적으로 여기며 환호를 보냈던 것입니다.
아톰의 비밀 기지로 올라가는 것 같은 허명욱 작업실의 계단
허명욱 새 작업실 전경
허명욱은 나이를 먹고 작가가 되어 오브제, 설치 등 조형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톰’을 다시 꺼내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톰에게 받은 기운찬 활력을 다시 관객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허명욱의 1, 2 작업실, 그리고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까지 모두 책을 엎어 놓은 모양의 ‘박공 지붕’을 하고 있는 것도 아톰의 영향입니다. 아톰의 건물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회화를 다루는 곳인지, 조각을 다루는 곳인지 특정 짓기 힘든 작가의 작업실은 아톰의 지붕에서 들어오는 자연의 빛과 함께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이곳저곳에 서있는 아톰 오브제, 넓게 펼쳐진 회화 작업, 직접 만든 스피커, 조명, 유려한 곡선의 테이블, 단정한 그릇들,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작업의 범위를 한정 짓기 어렵게 작업실을 채우고 있습니다. 마치 좋아하는 것을 마구잡이 수집해 놓았던 7-8세 소년 허명욱의 방을 떠오르게 합니다.
박공 지붕 모양을 한 1,2,3 작업실 내부
허명욱의 사물들1
허명욱의 사물들2
허명욱이 시간이 멈춘 존재인 아톰에게 애착을 갖는 이유는 어린 시절의 습관인 ‘수집’에서 기인합니다. 허명욱은 ‘수집이 창조가 될 때’라는 전시를 펼치며 시간을 담는 그릇으로써 ‘수집’의 행위에 대해 말했습니다. 기억과 감정을 담아 모아진 사물들은 나의 분신이 됩니다. 작가는 나의 조각들에게 둘러싸였을 때의 위안감을 유년의 기억을 통해 또렷하게 알고 있습니다. 아톰은 어린 허명욱의 분신이자 유년 시절의 정체성이고 시간을 수집하는 행위의 첫 대상이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영향받지 않는 캐릭터성은 시간을 탐색하며 작업을 펼치는 작가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허명욱의 새 작업실 내부
작가는 7-8세 때의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 시절의 정서에서 모든 감정이 하나씩 쌓여왔다고 합니다. “너는 왜 작업하니?”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마다 어린 허명욱의 공간, 대화들을 떠올립니다. 소년 허명욱의 모든 것이 어른이 된 작가 허명욱의 작업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7-8살의 자화상에 아톰 머리를 씌운 신작 소년 시리즈를 공개했습니다. 초승달 눈을 하고 개구지게 웃는 소년 허명욱이 아톰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통해 본인 예술 세계의 정체성을 전면으로 드러냈습니다.
신작 허명욱의 소년 자화상이 본인의 회화 작업을 보고 있다.
신작 허명욱의 소년 자화상이 쓰게 될 아톰 투구 작업 과정
신작 소년 아톰
시간의 흔적을 채취하고 그러모아 다시 창작하는 허명욱의 소년, 그리고 아톰이 해 질 녘 햇빛에 부딪힙니다. 부지런히 소년 조각을 닦이고 망치질하는 작가의 움직임 소리가 아톰 지붕을 통해 울려 퍼집니다. 여느 때와 같이 시간은 흐르고 작가는 과거와 오늘의 시간을 겹쳐 묵묵히 작업을 해나갑니다.
작업 중인 신작 소년 자화상들
지는 햇빛을 등지고 작업 중인 허명욱 작가
EDITOR 진혜민 DESIGNER 이진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