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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의 산'을 마주하는 방법

    일평생 구도자의 태도로 한국의 자연을 다채롭게 빚어낸 전위 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화백. 숱한 풍경 중 선생님의 마음을 매어 두었던 것은 다름 아닌 ‘산’이었습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그 한 마디에 숨어있는 속뜻을 우리의 삶으로 끌어들이고자 유영국 화백의 궤적을 뒤쫒았습니다. 그 끝에서 만난 것은 오래된 사진 몇 장이었죠. 선생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풍경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992 방배동 작업실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삶이 유독 복잡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유영국 화백 작품 앞에 서고 싶어집니다. 유영국 화백은 일평생 구도자의 태도로 한국의 자연을 다채롭게 빚어낸 전위 미술의 선구자이기도 하죠. 숱한 풍경 중 선생님의 마음을 매어두었던 것은 다름 아닌 '산'이었습니다. 별다른 기교 없이 캔버스 한 면을 가득 채운 산을 보면 담대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한참을 관망하다 한 사람의 내면에 그리도 거대한 산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응하게 됩니다. 이윽고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천둥처럼 메아리칩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그 한마디에 숨어 있는 속뜻을 우리의 삶으로 끌어들이고자 유영국 화백의 궤적을 뒤쫓았습니다. 그 끝에서 만난 것은 오래된 사진 몇 장이었죠. 선생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풍경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986 제주도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제국문화의 중심지였던 도쿄 문화 학원에서 추상 미술을 연구했던 유영국 화백은 전위미술에 대한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미술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졸업 이후 작업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던 선생은 붓을 잠시 내려두고선 카메라를 목에 걸었지요. 오리엔탈 사진 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사진 공부를 하게 된 유영국 화백은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유영국의 아내 김기순과 유영국의 뒷모습, 그리고 발자국
    ⓒYoo Youngkuk Art Foundation

    “나에게 카메라는 스케치북이자, 직관과 자생의 도구이며, 시각의 견지에서 묻고 동시에 결정하는 순간의 스승이다.” ㅡ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은 성찰을 드로잉하는 순간적인 행위’라고 이야기했던 어느 사진작가처럼 유영국 화백에게도 카메라란 에스키스를 위한 작업 노트였습니다. 졸업 후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하고 나서도 여행을 갈 땐 라이카 카메라와 함께 이곳저곳을 누볐지요. 아내와 함께 걸었던 죽변항, 언덕과 계곡, 노을. 경북 울진의 깊은 산골을 쏘다니던 유년기 시절부터 선생님의 곁에 벗처럼 존재했던 자연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응시하고 포착했습니다.


    1986 제주도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사진들 사이에서 유달리 눈에 들어왔던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하염없이 펼쳐진 겨울 산이요. 인화지는 오래되어 빛이 바랬어도, 그 눈부심 만큼은 생생하게 전해지더군요.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피어난 눈꽃과 설악산 비선대 사진을 훑다 보니 언젠가 선생님께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남들이 안 가는 겨울 산을 걸을 때가 많다.”고 이야기하신 것이 떠올랐습니다.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단면, 다채로운 색….” 개인 작업 활동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기 시작한 1960년대 말부터 타계 직전까지 선생님께서는 매일 수행하듯이 한 폭의 산을 그렸습니다. 일곱 평 정도 되는 작업실에 앉아 올곧은 자세로 그렸던 산은 그저 눈앞에 존재하는 자연이 아닌 하나의 세계이자 자신이기도 했죠. 그가 화폭 위로 풀어낸 산세는 거칠 것 없이 강렬한데, 정작 화백이 동경하던 산의 모습은 한없이 소박했다는 것이 뭐라 설명할 수 없이 아득하게 여겨졌습니다. 어떤 색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하얗디 하얀 정경 속에서 그는 무엇을 바라보았을까요.


    1979년경 등촌동 작업실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선생이 마주했을 장엄한 겨울 산을 상상해 봅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수많은 풍경 중 무엇을 담을 것이냐?’에 대해 먼저 질문해야 합니다. 무수한 이미지들 사이, 나의 마음을 찌른 단 하나의 피사체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야만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에게 고요한 설산은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빈 캔버스나 다름없었습니다. 쾌청한 하늘 아래 선 헐벗은 나무들, 그 앙상한 가지들이 이뤄낸 기하학적인 형태를 발견하고선 뷰 파인더에 시선을 고정했겠지요. 사진의 중심이 되는 피사체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프레임 주변에 존재하는 방해 요소들을 제거 해야 합니다. 찬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계절을 견디고 있는 나무의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셔터를 누를 때, 유영국 화백은 자연을 바라보는 조형적인 시선을 획득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목격한 너른 산을 자신의 프레임 속으로 옮겨 오는 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태어나는 새로운 풍경을 감지했을 테지요.


    1981 유영국이 직접 촬영한 목련나무 ⓒYoo Youngkuk Art Foundation


    당시 사용했던 필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이미지는 고작 서른 장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결과물을 바로 확인하거나 편집할 수도 없었죠. 그러니 셔터를 누르기 전에 지금 이 장면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심해야 합니다. 한 번 보고서는 잊혀질 장면들을 무한 대로 수집할 수 있는 오늘날, 유영국 화백의 프레임에 기록된 장면을 보며 다시금 생각에 잠깁니다. “무성한 잎과 나뭇가지 사이로 잔디 밭에 쏟아지는 광선은 참 깨끗하고 생기를 주는 듯 아름답다. 항상 나는 내가 잘 알고 또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곳에서 느낀 것을 소재로 하여 그림을 그린다.” 소란한 세상 속에서도 묵묵히 자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던 유영국 화백은 자신만의 필터를 거쳐 길어올린 색과 장면들로 여백을 채워갔습니다. 깊은 바다, 붉은 태양, 나무에 맺힌 꽃봉오리. 그가 어여삐 여기며 눈 맞췄던 생동감 넘치는 순간들은 캔버스 앞에 설 수 있는 원동력을 선사했고, 그의 손 끝에서 새 숨을 얻어 강렬한 빛깔로 부활했습니다.


    ⓒprintbakery

    어떤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이를 그린 이의 시간을 다시금 살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유영국 화백의 화폭 앞에 설 때면 그가 응시했던 풍경의 겹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를 따라 헤매다 보면, 나란히 찍혀있던 작가의 발자국은 어느 틈엔가 자취를 감춰버리고 맙니다. 길 위에는 오로지 나의 흔적만 남아있죠. 어쩌면 이 모든 걸음은 우리 마음에도 존재하고 있을 ‘내 안의 산’으로 가기 위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지러이 흩어진 발자국이 모여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줄 때쯤 작가의 작품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이 한마디를 이해하고자 떠났던 여정은 “산을 그리다 보면, 그 속에 굽이굽이 길이 있고, 그것이 인생인 것 같아서 내 그림의 산속에는 여러 모양의 인생이 숨어있다.”라는 문장에 닿기 위한 일이었나 봅니다.


    ⓒprintbakery

    유영국 화백과 프린트 베이커리가 함께한 5년만의 신작, 이번 프리미엄 에디션을 통해 그의 카메라에 담겼던 자연의 정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유영국 화백의 자리에 서서 한 쪽 눈을 지그시 감아봅니다. 쏟아지는 햇살과 밀려드는 파도가 그제야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여느 때보다 귀한 마음으로 포착한 장면들, 유영국 화백을 따라 걷다 마주한 풍경이 담긴 프로모션 필름을 함께 감상해 보세요.



    EDITOR 송효정  WRITER 오은재  FILM 류현욱  DESIGN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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