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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미술 여행 Ep.2 미드나잇 인 베를린

    작품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기도, 미래로 건너가 보기도 하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교류는 어쩌면 미술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인 것도 같습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요. 베를린으로 떠나게 된다면 앞서 소개해드린 미술 스팟을 거닐며 나만의 <미드나잇 인 베를린>을 써 내려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Gropius Bau 외부 전경 (좌), Daniely Boyd 작품이 설치된 1층 전경 (우) © Robert Rieger

    4. Gropius-Bau


    Gropius-Bau는 건축가 Martin Gropius와 Heino Schmieden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이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베를린 공습으로 건물이 심하게 손상되어 1960년대에 철거가 될 계획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건축가이자 바우하우스의 창립자인 Balter Gropius에 의해 철거가 중단되었고, 1970년대에 재건축 작업이 시작되면서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관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사의 시간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요. 의도적으로 건물이 파괴되었던 틈을 남겨두어서 찾아보는 재미도 있죠.


    Gropius-Bau에서는 국제 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로 조금은 익숙한 이름, Daniel Boyd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1982년생으로 호주 원주민 출생입니다. 호주의 역사를 기반으로 서구의 역사적 관점을 깊게 파고들며 작품을 통해 “세상을 단일한 역사 구조가 아니라 다수의 서사 구조로 읽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요. 미술관 1층에서 신발을 벗고 작품 위를 걸어보는 것으로 전시가 시작되는데 물 위를 걷는 듯하기도, 하늘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Daniel Boyd 전시에 준비된 팸플릿 © 김은영

    이 미술관에 감동한 건 멋진 건물과 전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Daniel Boyd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느껴지는 그들의 섬세한 배려 때문이었어요. Daniel Boyd 전에서 받은 팸플릿은 미술관 특유의 딱딱함 없이 작품 제목이 손 글씨체로 적혀져 있었습니다. 작품 옆에 캡션이 없어서 팸플릿을 펼쳐보기 전까지는 제목을 알 수 없지요.


    Daniel Boyd의 작품을 멀리서 보았을 때 (좌), 가까이서 보았을 때 (우) © 김은영

    전시를 보는 동안 그의 작품을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면서 제목을 추리하게 되는데, 매번 감상이 달라졌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몰라서 새롭게 보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어쩌면 이 행위 자체가 세상을 여러 갈래로 읽어야 한다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녹여낸 이 섬세한 큐레이션은 지하 공간에서 다른 관람자들과 함께 무료로 볼 수 있는 Daniel Boyd에 관련된 다큐멘터리까지 이어졌습니다. 작가와 작품을 풍부하게 즐겼으면 하는 미술관의 진심이 느껴졌어요.


    너무 사랑하게 된 이 미술관의 1층에는 서점을 방불케 하는 book shop까지 있으니 오랜 시간 여유를 가지고 방문해 보세요!


    Berlinsche Gallerie 외부 전경 © NOSHE

    5. Berlinsche Gallerie


    바닥의 노란 그래픽으로 익숙한 이 미술관을 꼭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위트 있는 포스트 때문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 같지만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상상해 볼 법한 글들로 채워진 사진들이 있었거든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큐레이터 Cem A의 The Museum is closed 시리즈 내용은 이렇습니다.



    Berlinsche Gallerie 공식 SNS에 업로드 된 'The Museum is closed' 시리즈© Victoria Tomaschko

    1) 미술관은 디렉터의 바쁜 스케줄로 휴관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미술관은 귀리 우유가 부족해서 휴관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미술관은 베를린의 주택난으로 휴관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프로젝트가 베를린 주립 미술관에서 올리는 홍보성 글인지 아닌지를 떠나 건물의 개보수 기간 동안 이런 위트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곳이라니! 기대를 잔뜩 안고 들어간 곳에서 처음 보인 작품은 생각보다 무거웠습니다. 아주 연약해 보이는 동물들이 넓고 찬 바닥에 누워있었거든요.



    Nasan Tur의 작품 © 김은영

    전시의 시작이었던 Nasan Tur의 작품은 단순해 보이지만 권력의 행사와 그 정당성에 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들은 왜 죽이는지,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폭력성이 있고 그것은 무엇에 의해서 나타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죠.


    제가 현대미술 전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지점들 때문이에요. 현실을 살다보면 비슷한 생각만 하게 되고 마땅히 고민해야 할 거리를 잊고 살아가게 되는데, 전시를 보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어떤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잠시라도 생각하게 되거든요.


    큐레이터가 애써 고른 좋은 질문들로 가득한 Berlinische Gallerie는 전시를 보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방문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Design Panoptikon 전경 © 김은영

    6. DESIGN PANOPTIKON


    DESIGN PANOPTIKON은 한 남자가 16년간 수집해 온 것들로 가득한 곳이에요. 그는 이곳의 큐레이터이자 도슨트이고, 포토그래퍼이자 모델이기도 합니다. 그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어떤 사람일지, 무엇을 좋아할지 조금은 예측이 될 만큼 뚜렷한 취향이 공간 전체를 차지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단순히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모아놓은 컬렉션은 아닙니다. 그만의 시선으로 다시 새롭게 조립한 것들이 가득해서 작지만 뮤지엄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곳이죠.



    Design Panoptikon 내부 전경 (좌), 이곳의 주인이 직접 모델이 되어 촬영한 엽서 (우) © 김은영

    그가 궁금해진 저는 어떻게 컬렉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이것들을 어디에서 사 모았는지 물었습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어요. 본인 눈에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샀을 뿐이라고 했거든요. 컬렉팅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답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전시된 것들은 대부분 eBay에서 1유로에 구매했다고도 했습니다. 제 질문에 답하는 그의 눈에서는 빛이 났습니다. 액자에 걸려있는 사진과 엽서 속 모델도 본인이라며 돈이 없어 사진도 직접 찍었다고 신이 나 이야기를 했죠. 공간과 사람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곳은 그가 열고 싶을 때 문을 열고, 그의 질문에 답을 해야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공간이에요. 베를린과 베를리너의 감성을 한껏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Bauhaus Dessau로 가는 길에 위치한 카페 (좌), Bauhaus Museum 내부 (우) © 김은영

    7. Bauhaus Dessau


    Bauhaus Dessau는 베를린 중앙역 Hauptbanhof 역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우하우스 마을처럼 생긴 이곳의 풍경은 미국 서부에 있는 영화 세트장이라고 느껴질만큼 현실적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고, 벤치에 앉는 흔한 모습들도 멋진 건물과 탁 트인 하늘 아래서는 잔잔한 영화의 오프닝에 나올 것처럼 빛났습니다.



    Master’s House 전경 © 김은영

    Bauhaus Museum을 지나 가장 궁금했던 Master’s House로 향했습니다. Walter Gropius와 그의 친구들이 살던 집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에요. 얇고 긴 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건물 위로 햇살이 알맞은 조도의 조명처럼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큰 작품을 보는 것 같았어요.


    이 그림 같은 공간을 바라보고 있자니 작년에 방문했던 네덜란드의 Rietveld Schröderhuis가 떠올랐습니다. 건축양식뿐만 아니라 내부의 색감도 비슷해 보였거든요. 돌아가는 길에 찾아보니 그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고요. 시각적 순수성에 뿌리를 둔 바우하우스의 예술가들과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양식 반하여 나온 신조형주의(De stil)를 추구하던 예술가들은 다른 곳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 김은영

    미술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잊고 있던 지난날의 경험과 기억이 천천히 깨어나 엮어지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가끔 아주 먼 나라 혹은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의 작품이 서로 겹쳐 보이기도 하고, 그들에게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하거든요.


    작품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기도, 미래로 건너가 보기도 하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교류는 어쩌면 미술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인 것도 같습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처럼요. 베를린으로 떠나게 된다면 앞서 소개해드린 미술 스팟을 거닐며 베를리너가 되어 나만의'미드나잇 인 베를린'을 써 내려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WRITER 김은영  EDITOR 송효정  DESIGNER 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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