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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했던 나의 할아버지, 장욱진

    기본 정보
    artwork 따뜻했던 나의 할아버지, 장욱진
    artist PRINT BAKERY
    price Editorial
    maker print bakery
    info Editorial
    code P0000FZS
    상품간략설명 품이 너른 나무 같은 사람, 그 품에 기대어 큰 한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자라나 할아버지가 가장 치열한 고민을 거쳤던 ‘덕소 시대’의 나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홀로 짊어지었을 고단함을 가늠하게 된 지금, 할아버지와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듭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이 아닌, 할아버지 장욱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장욱진의 외손녀인 인천대 이현주 교수가 꺼내 놓은 기억의 조각으로 작품 너머의 장욱진을 소개합니다.
    상품추가설명 번역정보 20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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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정보

    품이 너른 나무 같은 사람, 그 품에 기대어 큰 한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자라나 할아버지가 가장 치열한 고민을 거쳤던 ‘덕소 시대’의 나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홀로 짊어지었을 고단함을 가늠하게 된 지금, 할아버지와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듭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이 아닌, 할아버지 장욱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장욱진의 외손녀인 인천대 이현주 교수가 꺼내 놓은 기억의 조각으로 작품 너머의 장욱진을 소개합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장욱진은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담아 평생 집과 가족을 그렸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맑은 그림에는 따스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그림을 통해서 서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다” ㅡ장욱진

    함께 견디면서 힘이 되어주는 가족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고 만족스러운 것도 없는 나날. 서울대 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40대의 장욱진은 “현대는 방향 없이 급회전하는 무질서한 소용돌이다. 나의 삶은 그곳에서 벗어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판단을 내리고 산골 덕소로 떠나기를 결정합니다. 3년간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근무한 것에 이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 경제 활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부인 이순경 여사 홀로 서울에 남아 동양 서림을 운영하며 6남매를 키웠습니다.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은 장욱진의 그림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현실에서는 함께 할 수 없던 가족과 자신이 함께 있는 그림을 그려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했습니다.

    장욱진, 가족도(A family Portrait), 캔버스에 유채, 7.5x14.8cm, 1972,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장욱진은 가족과 떨어져 12년간 덕소에 머물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로 침잠합니다. 덕소 시기에 그린 그림은 우리가 봐왔던 장욱진의 대표작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견디지 못한 자책, 가족을 포기하고 내려왔지만 잡히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 고뇌는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그리는가’라는 깊은 질문으로 신중히 걸어간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으로부터 멀리 떠나갔다가 가장 깊은 곳으로 돌아오는 여정, 지난하게도 이어지던 그 시간을 가족들은 함께 견뎌주었습니다.

    장욱진, 무제 (Untitled), 캔버스에 유채, 45x27cm, 1964,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장욱진미술문화재단


    김애란 작가는 <바깥은 여름>에서 이런 질문을 남겼습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 나간다. 어느 한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장욱진은 섬세하고 따스한 목소리로 읊조립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가족의 곁이라고.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

    덕소의 지난하고 유구한 역사를 뒤로 한 채, 장욱진은 부인과 함께 명륜동을 거쳐 수안보에 정착합니다. 수안보의 고요함과 머리 위 별 무더기, 아내의 존재는 장욱진의 그림에 평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스스로 득의의 시절이라 여기며 의욕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수안보는 부인 이순경 여사가 처음으로 남편에게 의지한 곳이기도 합니다. 초가지붕과 돌담, 싸리문이 있는 농가를 직접 수리하여 집을 꾸렸는데, 벌레나 뱀이 튀어나와 아내는 자주 끙끙대며 골치를 앓았습니다. 장욱진은 무서워하는 아내를 지켜주며 미안함과 죄책감을 많이 덜었다고 훗날 고백합니다.

    “나 서울에서는 그 사람 없이는 꼼짝달싹도 못해. 얼이 빠져 가지고. 근데 수안보에서는 나한테 기댔지요. 한 번은 마루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난단 말이야. 아, 또 뭔가 가 보니 청개구리 요만한 거. 그래, 내가 쫓아주었죠. 여름에 아궁이 불도 내가 다 때 주고. 뱀 다닌다고 부엌에 못 들어가니 할 수 없지. 그게 다 자연인데 뭐 무서워. 내가 다 그렇게 서울서 진 빚을 갚았어요.”
    ㅡ장욱진, <강가의 아틀리에> 중

    장욱진, 무제 (untitled), 캔버스에 유채, 32x24cm, 1982,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장욱진미술문화재단


    그즈음 장욱진의 얼굴엔 뿌듯함이 자주 차올랐고, 가족도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부인의 뒤에 가려져 얼굴만 조그맣게 보이던 콧수염 사내는 이제 부인의 옆에 나란히 서게 되었습니다. 장욱진은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다 나를 드러내고 발산한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작품에는 그가 머물렀던 시공이 묻어납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맡은 냄새, 들은 소리, 만난 사람, 겪은 계절이 배어 있습니다.

    따뜻했던 나의 할아버지

    품이 너른 나무 같은 사람, 그 품에 기대어 큰 한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자라나 할아버지가 가장 치열한 고민을 거쳤던 ‘덕소 시대’의 나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홀로 짊어지었을 고단함을 가늠하게 된 지금, 할아버지와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듭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이 아닌, 할아버지 장욱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장욱진의 외손녀인 인천대 이현주 교수가 꺼내 놓은 기억의 조각으로 작품 너머의 장욱진을 소개합니다.

    장욱진은 평생 동안 물건을 사는 방법은 서툴렀지만, 고르는데는 탁월했습니다. 감각적인 안목으로 물건의 형태와 교감하며 물건을 고릅니다. 자그마한 물건은 손으로 찬찬히 만져보고 쥐어보았습니다. 한참을 손으로 굴려보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리를 뜨고 맙니다. 그러면 아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대신 남기고 멀리 가버린 남편을 따라가야 했습니다. 물건을 고르면 뒤에서 계산하는 것도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손으로 감각하고 고른 몇 가지의 선물을 손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좌)장욱진, 무제, 27x24cm, 석판화,1978, (우)장욱진, 무제, 26.6x20.2cm, 종이에 매직펜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첫 손녀라서 선물 받는 특혜를 많이 누렸죠. 여행을 다녀오실 때 조그마한 물건을 사서 선물로 주곤 하셨어요. 말수가 워낙 적으셔서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다정한 말로 풀어내시기보다는 작은 선물들로 표현하셨죠. 할아버지 선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새 오브제랑 지갑이에요. 목각으로 만든 새 오브제였는데, 당신이 직접 손으로 계속 만져서 반질반질하게 윤기를 낸 뒤에 주셨어요. 지갑은 할아버지가 ‘나는 심플하다’고 늘 말씀하신 것처럼 아주 미니멀한 디자인이었죠. 사실 돈은 많이 안 들어갔는데(웃음), 모양이 예쁘다고 사주셨어요. 할아버지 다운 선물이에요.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시간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어지고 포개지는 것 같습니다. 장욱진의 시간이 2021년의 우리에게 다가와 따스한 위로로 겹쳐집니다. 삶이란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가지만, 순간순간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 그렇기에 너그러워질 수 있다고 장욱진의 삶은 말 합니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함께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그냥 한 공간에 함께 있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삶을 그대로 그렸어요. 인간으로서 하나의 작품인 것 같아요. 그런 분과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가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나요.”

    장욱진, 노인 (An Old Man), 캔버스에 유채, 41x32cm, 1988,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참고문헌
    『강가의 아틀리에』 (장욱진, 민음사, 2007)
    「장욱진의 가족그림에서 보이는 전통성」 (이하림, 『미술사논단』11호, 한국미술연구소, 2000)
    「미술치료 관점에서 본 집의 심리적 의미: 장욱진의 작품을 중심으로」 (정영인, 『미술치료연구』24권 2호, 한국미술치료학회, 2017)

    EDITOR 박세연  DESIGNER 이진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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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장욱진은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담아 평생 집과 가족을 그렸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맑은 그림에는 따스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그림을 통해서 서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다” ㅡ장욱진

    함께 견디면서 힘이 되어주는 가족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고 만족스러운 것도 없는 나날. 서울대 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40대의 장욱진은 “현대는 방향 없이 급회전하는 무질서한 소용돌이다. 나의 삶은 그곳에서 벗어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판단을 내리고 산골 덕소로 떠나기를 결정합니다. 3년간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근무한 것에 이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 경제 활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부인 이순경 여사 홀로 서울에 남아 동양 서림을 운영하며 6남매를 키웠습니다.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은 장욱진의 그림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현실에서는 함께 할 수 없던 가족과 자신이 함께 있는 그림을 그려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했습니다.

    장욱진, 가족도(A family Portrait), 캔버스에 유채, 7.5x14.8cm, 1972,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장욱진은 가족과 떨어져 12년간 덕소에 머물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로 침잠합니다. 덕소 시기에 그린 그림은 우리가 봐왔던 장욱진의 대표작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견디지 못한 자책, 가족을 포기하고 내려왔지만 잡히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 고뇌는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그리는가’라는 깊은 질문으로 신중히 걸어간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으로부터 멀리 떠나갔다가 가장 깊은 곳으로 돌아오는 여정, 지난하게도 이어지던 그 시간을 가족들은 함께 견뎌주었습니다.

    장욱진, 무제 (Untitled), 캔버스에 유채, 45x27cm, 1964,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장욱진미술문화재단


    김애란 작가는 <바깥은 여름>에서 이런 질문을 남겼습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 나간다. 어느 한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장욱진은 섬세하고 따스한 목소리로 읊조립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가족의 곁이라고.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

    덕소의 지난하고 유구한 역사를 뒤로 한 채, 장욱진은 부인과 함께 명륜동을 거쳐 수안보에 정착합니다. 수안보의 고요함과 머리 위 별 무더기, 아내의 존재는 장욱진의 그림에 평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스스로 득의의 시절이라 여기며 의욕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수안보는 부인 이순경 여사가 처음으로 남편에게 의지한 곳이기도 합니다. 초가지붕과 돌담, 싸리문이 있는 농가를 직접 수리하여 집을 꾸렸는데, 벌레나 뱀이 튀어나와 아내는 자주 끙끙대며 골치를 앓았습니다. 장욱진은 무서워하는 아내를 지켜주며 미안함과 죄책감을 많이 덜었다고 훗날 고백합니다.

    “나 서울에서는 그 사람 없이는 꼼짝달싹도 못해. 얼이 빠져 가지고. 근데 수안보에서는 나한테 기댔지요. 한 번은 마루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난단 말이야. 아, 또 뭔가 가 보니 청개구리 요만한 거. 그래, 내가 쫓아주었죠. 여름에 아궁이 불도 내가 다 때 주고. 뱀 다닌다고 부엌에 못 들어가니 할 수 없지. 그게 다 자연인데 뭐 무서워. 내가 다 그렇게 서울서 진 빚을 갚았어요.”
    ㅡ장욱진, <강가의 아틀리에> 중

    장욱진, 무제 (untitled), 캔버스에 유채, 32x24cm, 1982,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장욱진미술문화재단


    그즈음 장욱진의 얼굴엔 뿌듯함이 자주 차올랐고, 가족도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부인의 뒤에 가려져 얼굴만 조그맣게 보이던 콧수염 사내는 이제 부인의 옆에 나란히 서게 되었습니다. 장욱진은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다 나를 드러내고 발산한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작품에는 그가 머물렀던 시공이 묻어납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맡은 냄새, 들은 소리, 만난 사람, 겪은 계절이 배어 있습니다.

    따뜻했던 나의 할아버지

    품이 너른 나무 같은 사람, 그 품에 기대어 큰 한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자라나 할아버지가 가장 치열한 고민을 거쳤던 ‘덕소 시대’의 나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홀로 짊어지었을 고단함을 가늠하게 된 지금, 할아버지와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듭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이 아닌, 할아버지 장욱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장욱진의 외손녀인 인천대 이현주 교수가 꺼내 놓은 기억의 조각으로 작품 너머의 장욱진을 소개합니다.

    장욱진은 평생 동안 물건을 사는 방법은 서툴렀지만, 고르는데는 탁월했습니다. 감각적인 안목으로 물건의 형태와 교감하며 물건을 고릅니다. 자그마한 물건은 손으로 찬찬히 만져보고 쥐어보았습니다. 한참을 손으로 굴려보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리를 뜨고 맙니다. 그러면 아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대신 남기고 멀리 가버린 남편을 따라가야 했습니다. 물건을 고르면 뒤에서 계산하는 것도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손으로 감각하고 고른 몇 가지의 선물을 손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좌)장욱진, 무제, 27x24cm, 석판화,1978, (우)장욱진, 무제, 26.6x20.2cm, 종이에 매직펜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첫 손녀라서 선물 받는 특혜를 많이 누렸죠. 여행을 다녀오실 때 조그마한 물건을 사서 선물로 주곤 하셨어요. 말수가 워낙 적으셔서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다정한 말로 풀어내시기보다는 작은 선물들로 표현하셨죠. 할아버지 선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새 오브제랑 지갑이에요. 목각으로 만든 새 오브제였는데, 당신이 직접 손으로 계속 만져서 반질반질하게 윤기를 낸 뒤에 주셨어요. 지갑은 할아버지가 ‘나는 심플하다’고 늘 말씀하신 것처럼 아주 미니멀한 디자인이었죠. 사실 돈은 많이 안 들어갔는데(웃음), 모양이 예쁘다고 사주셨어요. 할아버지 다운 선물이에요.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시간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어지고 포개지는 것 같습니다. 장욱진의 시간이 2021년의 우리에게 다가와 따스한 위로로 겹쳐집니다. 삶이란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가지만, 순간순간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 그렇기에 너그러워질 수 있다고 장욱진의 삶은 말 합니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함께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그냥 한 공간에 함께 있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삶을 그대로 그렸어요. 인간으로서 하나의 작품인 것 같아요. 그런 분과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가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나요.”

    장욱진, 노인 (An Old Man), 캔버스에 유채, 41x32cm, 1988,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참고문헌
    『강가의 아틀리에』 (장욱진, 민음사, 2007)
    「장욱진의 가족그림에서 보이는 전통성」 (이하림, 『미술사논단』11호, 한국미술연구소, 2000)
    「미술치료 관점에서 본 집의 심리적 의미: 장욱진의 작품을 중심으로」 (정영인, 『미술치료연구』24권 2호, 한국미술치료학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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